학원에서, 과외를 통해서 학생들과 호흡하다 보면
학생들이 저를 놀라게 할 때도 있고,
화나게 만들 때도 있고(물론 요즘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기쁘게 만들 때도 있는데요.
가끔 학생들이 저를 생각에 잠기게 만듭니다.
요즘 가면 갈수록 학생들의 질문은 날카로워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날카로워진다는 것이, 날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 더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이유를 갈구하는 질문이라는 의미입니다.
고1 학생과 문학을 같이 공부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니 선생님, 인간에게 감정이라는 게 대체 왜 있는 거예요?
감정이 없었으면 애초에 우울이라는 것도 없었을 거고,
사람들이 이렇게 무기력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일도 없었을 거고,
남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든 말든 타격감도 없을 거고,
애초에 감정이란 게 없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이 질문을 받고 답을 못했습니다.
문학을 가르친다면서 이런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다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지금은 정확히 답을 못하겠다.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긴 한데,
너랑 나랑 같이 1년 동안 고민해보자.
방학 때 이런저런 책들도 같이 읽어보고,
진화심리학 분야의 책들이 도움이 될 것 같으니 같이 읽어보면서 찾아보자.
어쩌면 평생의 숙제가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얼렁뚱땅 넘긴 거죠.
이 질문을 받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요, 책을 뒤져가며 몇 가지 말들을 얻었지만,
제가 납득하고, 그 친구가 납득할 만큼 충분하진 않아서 아직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이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냥 전 방에 파묻혀서 교재 만들고, 책 읽고, 문제 풀고, 강의 듣고, 공부하고,...
이렇게 남들은 절대 따라하고 싶어하지 않는 쳇바퀴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넌 대체 예과생이 왜 그러고 사냐, 나중에 본과 가면 어쩌려고 그러냐... 같은 이야기를 듣고 살지만,
그렇게 살다가도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는 친구들과 날 좋은 때 약속 잡아서 같이 놀고 나면 괜히 다시 의욕이 생기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어제보다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면
괜히 내가 저 모습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보이는 것 다 빼고도
그냥 밖에 나가서 맑은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요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푹푹 쳐지지만요)
제가 부산에서 왔지만, 남들은 잘 모르는 동네, 시골과 다름 없는 동네에서 살아서
앞에는 낙동강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었고, 밤에는 하늘에 별도 좀 떴습니다.
기분이 안 좋거나 부모님과 싸운 날에는 자전거를 타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면
내가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도 잊어버렸어요.
대치동의 아이들이 아무리 다 가졌다지만 이런 경험이 없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발 사진으로 유명했던 발레리나 강수지 씨가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몇십 년 만에 하늘을 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라고 말한 게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대치동의 아이들이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이 자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오늘 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 죽고 싶다, 힘들다 그런 의미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질문을 올린 친구가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삭제해버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대충 기억을 옮겨보자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싫더라도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나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고, 불안과 걱정이 끊이지 않는데,
왜 살아야 하냐고 그런 것 같습니다.
잠시 행복하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들(?)이 이렇게 힘든 삶을 지속할 만큼 큰 것이냐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을 처음 읽을 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불교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이야기해줘야 하나 싶다가도,
이 질문을 나는 해본 적이 있나 싶더라고요.
저 질문에 대해 저는 답변을 못하겠습니다.
저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냥 사소한 것에도 잘 웃고, 즐거워하고
남에게 얘기하긴 부끄럽지만 꿈도 목표도 있어서, 그걸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긴 한데,
저렇게 삶이 힘들고 고통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꿈을 가져라"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게 뻔하고요.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어쩌면 제가 평생 찾아야 하는 숙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다 그냥 일기장에 아무렇게나 쓴 글이 되어버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네요
고등학교 때도 없던 중2병이 20대에 도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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